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천보 전투 (문단 편집) == 논란 == [[김일성]]이 사장(지휘관)으로 있던 동북항일연군 2군 6사가 보천보를 공격하여 일부 전과를 올린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으나 실제로 [[김일성]]이 보천보 공격을 이끌었는지에 대해서는 일부 이견이 있다. * [[김일성 가짜설]]을 신봉하는 측에서는 김성주(김일성의 본명)와는 다른 '진짜' 김일성이 보천보 습격을 주도했다고 주장한다. 그 근거는 《[[매일신보]]》 등에 실린 김일성이 모스크바 유학을 다녀왔고, 보천보 전투 이후 1937년 11월에 토벌대에 의해 사살되었다는 등의 기사다. 그 외에 만주국군의 월간지 《철심(鐵心)》에 실린 보천보 주민 인터뷰에서 지휘관이 약 40대로 보였다는 기사 등도 인용된다. 실제의 [[김일성]](김성주)은 소련 유학 경력도 없는 20대에 이후까지 살아남았으니 이들이 지목하는 보천보 전투의 지휘관의 특징과는 들어맞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. 그러나 이들 문헌들은 대개 [[김일성]]에 대한 신뢰할만한 정보가 극히 부족한 상태에서 일본군의 과장된 관제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 적었거나 목격자도 단정하기 어려운 정보[* 원래 상대의 겉모습만 보고 나이대를 추정하기는 매우 어렵다. 노지에서 험한 생활을 하던 유격대원들은 행색이 겉늙어 보이기 쉬웠다. 더군다나 보천보 전투처럼 밤에 횃불에 비친 모습으로는 더더욱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.]를 실은 것들이다. 학계의 대다수는 이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. * 김성주가 2군 6사 사장 [[김일성]]이 맞다고 인정하지만 보천보 공격은 [[김일성]]이 아닌 다른 인물이 지휘했다는 [[https://www.donga.com/news/article/all/20190613/95969344/1|주장]]도 있다. 유격대 특성상 가용한 병력을 지휘관과 참모장이 나눠서 이끌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는데 보천보 공격 때는 2군 6사 참모장 왕줘저우(王作舟)가 이끄는 부대가 도강을 했다는 이야기이다. 이 주장에 따르면 당시 김일성은 압록강을 건너오지 않고 다른 곳에서 작전을 펼치다가 보천보 전투 다음 날인 1937년 6월 5일에 왕줘저우 부대와 다시 합류했다고 한다. 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펼친 재미 [[조선족]] 작가 유순호는 자신이 중국 당국의 비밀 문건을 열람하고 여러 동북항일연군 출신자들을 인터뷰한 결과라고 이야기할 뿐 명확한 문헌적 근거(중국 당국의 공식/비공식 문건에 대한 서지정보)를 제시하지는 않았다. 따라서 이 역시 보천보 공격을 [[김일성]]이 지휘했다는 당대 문건이 매우 많은 상황에서 이를 뒤집을만한 근거로는 보기 어렵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